뮤지컬 드라큘라 추천 후기

**모든 해석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불편한 분들은 스킵해주세요.**

**배우'님' 호칭은 직접 부르는 자리가 아닌 한 편의상 생략하는 편입니다. 역시 불편한 분들은 스킵해주세요.**

**결말 포함한 스포가 다수 있습니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매력

이번 2020년 삼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드라큘라'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그 안에 로맨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접목시킨 뮤지컬이다. 내가 초연과 재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삼연으로라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극.

사실 개연성이 그리 좋은 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라큘라가 거울에는 비쳐지지 않는 삿된 존재라 드라큘라 백작 성에는 거울이 없다는 점, 조나단에게 방을 나서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했는데도 뱀파이어 슬레이브들이 달려들었던 이유는 사실 조나단이 방을 뛰쳐나갔기 때문인데 그 부분이 뮤지컬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 극 중 퀸시가 조나단에게 칼을 건네지만 그 칼의 역할이나 의미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붕 뜬 상태로 극이 끝났다는 점(가장 의문스러운 장면. 퀸시는 왜 칼을...? 조나단은 그 칼을 쓰지도 않았다.), 가사집 앞쪽의 넘버 리스트에는 Quincey's Death이라는 언더 넘버가 있는 것을 보아서는 퀸시가 조금 더 중요한 역이었던 것 같은데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난 점, 뱀파이어는 처음 누군가의 집에 들어갈 때는 초대를 받아야 한다는 설정 때문에 루시의 'The Invitation'이라는 넘버가 있다는 점, 뱀파이어가 흐르는 물 위를 날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배를 타고 건너간다는 점, 영국에서 육로를 이용해서 도대체 어떻게(영국은 섬인데....) 루마니아에 갈 것인지 의문, 마지막에 드라큘라를 찔러 죽이는 칼은 400년 전 엘리자벳사를 찔러 죽게 만든 칼이라는 것 등이 직접 설정을 열심히 찾아보지 않는 사람은 알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정을 기존에 좀 알고 봐야 하는 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꽤 많다.

그럼에도 이 극이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 드라큘라 역을 맡은 류정한 배우님의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이야기는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원래 남의 망한 사랑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고도 하니(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망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짜 드라큘라는.........), 400년을 사랑했지만 망한 사랑인 드라큘라 이야기가 재미있을 만도 하다. 그렇지만 난 단순히 스토리를 떠나 여러 매력 포인트가 이 극에 있다고 생각한다. 

 

넘버가 너무 좋은 극

내가 많은 뮤지컬을 본 편은 아니지만, 드라큘라 넘버가 너무 좋다는 점은 알겠다. 좋아하는 넘버를 하나만 꼽기도 어려울 정도. 개인적으로는 Fresh Blood, A Perfect Life/Loving You Keeps Me Alive, Life After Life, The Master's Song, It's Over, Finale를 가장 좋아한다. 그렇지만 다른 넘버들도 다 좋다.

특히 배우의 페어 케미가 잘 맞는다면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울리게 하는 넘버. 1막의 클라이막스 넘버이면서 드라큘라와 미나의 애절한 사랑과 갈등이 정점을 찍는 파트다. 드라큘라 극에서는 Fresh Blood가 가장 유명하지만 이 넘버를 좋아한다면 Life After Life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드라큘라와 루시의 힘이 넘치는 매혹적인 넘버. It's Over는 무대 전체를 활용한 넘버이니 이 장면쯤에서는 오페라글라스에서 눈을 떼고 전체 무대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즐기는 것도 좋다. 렌필드 역의 The Master's Song은 꽤 난이도가 높은 넘버로, 이 한 곡만으로도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다. 마지막 "덮쳐와-!" 부분에서 고음은 속이 다 시원한 느낌. Finale는 마지막 절정을 위한 긴 여정 같은 넘버. 다른 넘버보다 가사도 많고 길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배우의 몰입도 절정에 다다르기 때문에 매 회차 조금씩 애드리브 등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걸 보는 재미도 있는 넘버. 이 넘버 마지막에 미나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이후 해석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배우들도, 보는 이들도 모두 넘버가 정말 좋은 극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넘버만으로도 한 번쯤 보러 갈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빈 개연성을 채워 나가는 배우들의 연기력

류정한 배우 드라큘라 포스터

 

드라큘라는 거]설정 구멍이 많다지만 그 빈 구멍을 채워 나가는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이 있다. 거의 무미의 어떤 음식에 MSG를 치는 느낌. 나는 류정한, 전동석 두 배우의 드라큘라만 봤기에 두 배우에 대해서만 후기를 남긴다. 두 드라큘라는 시작부터 연기 노선이 다르다. 류정한 배우의 드라큘라는 "환영합니다, 원한다면 들어오시지요." 하고 시작하면서 마치 들어오는 것은 너의 선택이라는 듯 말한다. 그리고 성에 온 손님을 대하는 태도 또한 까칠하고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다소 난폭하기까지 한 말투에 상대방을 몰아세우고 자신을 감히 거스르면 위험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려는 듯한 태도다. 이 사람이 내 클라이언트만 아니라면 당장 도망치고 싶을 것만 같은 느낌.(불쌍한 조나단)

반면 전동석 배우의 드라큘라는 "제 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들어오시죠."라고 시작을 연다. 그리고 조나단과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의 말투나 뉘앙스 등이 류정한의 드라큘라보다는 비교적 친절한 느낌이다. 마치 친절한 가면을 쓴 드라큘라 백작같다. 본색을 숨기고 조나단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도록 하려는 느낌이 류큘과는 다르다. 물론 미나가 떠난 이후에는 본색을 드러낸다.

미나의 등장 씬에서도 두 배우의 캐릭터 해석에 차이가 드러나는데, 류큘은 미나가 등장하고 인사를 하면서 마주친 후에야 미나가 자신이 그리워하던 '엘리자벳사'라는 것을 깨닫고 놀란다. 그렇지만 동큘은 미나가 탄 마차 소리가 들릴 때부터 이미 운명이 다가온다는 것을 눈치채고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나가 성에 들어온 후에도 돌아보기 전부터 동공지진하는 동큘.

 

동큘 포스터

 

두 배우의 드라큘라는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류큘은 400년 내내 사랑을 해왔지만 그 기간 동안 많이 비뚤어진 느낌이 들었다. 한없이 미나를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를 선택하고 감싸는 미나에게 크게 울부짖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400년을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며 살다 보면 그렇게 깨끗한 사랑의 감정만이 남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기다. 미나에 대한 사랑과 집착, 그리움, 슬픔, 분노, 이런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류정한 배우의 드라큘라를 보면 드라큘라만 슬픈 것이 아니라, 각 역할들의 서사가 너무 안 좋게 얽혀서 이런 비극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큘은 말 그대로 400년 동안 미나만을 올곧게 사랑해온 것 같은 드라큘라 같다. 사실 3월에 보았던 동큘과 최근에 만난 동큘이 꽤 다른 연기를 보여주어서 놀랐는데, 어린 아기 드큘이 그 사이 자라서 청년 드큘이 된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 전보다 최근에 만난 동큘이 훨씬 좋았다. 배우도 극이 진행되면서 연기가 변한다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어서 즐겁기도 했다. 동큘은 류큘보다 좀 더 슬프다. 동큘은 정말 드라큘라의 슬픔이 강렬하게 표출되는 연기를 보여줘서, 전동석의 드라큘라를 보고 나면 그가 정말 미나를 너무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사랑해왔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져서 드라큘라와 미나가 한없이 가엽고 마음이 아프다. 사실 객관적으로 스토리를 분석해보면 제일 불쌍한 건 조나단일 텐데, 동큘을 볼 때면 조나단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조정은 배우와 임혜영 배우의 미나 머레이

선녀미나 포스터

개인적으로 드라큘라는 미나 역할이 극의 방향을 끌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나 역할의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관객이 가져가는 엔딩도 다 달랐다. 두 명의 미나를 모두 경험해보았지만 미나 역시 연기가 모두 다르다. 일단 미나의 연기는 드라큘라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How Do You Choose에서 루시와 그녀의 남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난다. 루시가 남편감을 고르는 장면에서 조정은 배우는 다른 남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루시를 사랑하는 아더가 미나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조정은의 미나는 그저 곤란하다는듯 웃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는 루시 손을 잡아 이끈 후 너는 누굴 사랑하니? 하고 묻는 얼굴로 루시의 등을 떠민다. 그저 사랑하는 친구 루시의 선택만이 중요하다는 미나의 모습. 루시를 바라보는 얼굴에도 시종일관 흐뭇한 미소가 가득해서 마치 막내를 바라보는 큰언니같은 느낌이다.

조정은 배우가 언니같은 느낌이었다면 임혜영 배우는 조금 더 장난끼있는 동갑내기 친구같은 느낌이다. 루시가 아더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눈치 채고 그것을 도와주려고 한다. 그래서 아더에게 다정한 응원을 보내고 루시 몰래 도와주기도 하는 미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퀸시와 잭이 루시에게 구애하는 장면에서 조금 더 그 둘을 루시에게서 적극적으로 떼어내는 듯한 모습이다. 나한테도 이런 친구가 있었어서, 임미나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갔다.

드라큘라와의 사랑을 깨닫는 지점도 미나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조정은 미나는 엘리자벳사의 감정이 마음 속에 조금씩 싹트는 듯한 느낌이다. She에서 드라큘라와 엘리자벳사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마음 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눈을 감고 객석을 향해 선 상태로 느낀다. 그렇지만 임혜영 배우는 자신이 엘리자벳사라는 기억을 정말로 떠올려버린 듯한 모습을 보인다. She에서 엘리자벳사가 드라큘라를 향해 달려갈 때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드라큘라에게 뛰어가 안기려다가 멈칫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이후 나와의 사랑을 깨달았느냐고 묻는 넘버 At Last에서도 임혜영 배우는 울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 조정은 배우의 미나는 자기 자리를 지키며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다. 내 자리를 지켜야 하지만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듯한 모습.

임혜영 배우가 드라큘라를 이미 마음 속으로 사랑하게 됐지만, 미나의 '삶'을 버릴 수는 없어 갈등하는 느낌이라면, 조정은 배우는 드라큘라에 대한 감정이 엘리자벳사의 것일 뿐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하고 싶어하는 느낌이었다. If I Had Wings가 미나 넘버 중 가장 절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현실의 미나의 삶과 드큘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미나가 정말 아름답기도 하고, 내적 갈등을 마친 미나가 이후 드라큘라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임미나 포스터

특히 마지막 Finale에서 미나들의 연기가 마지막 결말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정은 미나는 드라큘라를 선택할 때도 자기 손으로 던져버린 십자가를 향해 몸을 돌려 바라보다 결국 당신을 놓을 수는 없다는 듯 드라큘라를 바라본다. 그리고 끝내 자기 손으로 드라큘라를 죽였다는 충격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에 견딜 수 없이 슬퍼하고 오열한다. 마지막에는 신에게 드라큘라의 영혼을 구원해달라는 듯 빌며 관 위에 풀썩 쓰러진다.

그러나 임혜영 미나는 훨씬 더 격정적이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드라큘라를 향해 갈 때도 드라큘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똑바로 응시한다. 내 손으로 당신을 선택했으며, "다시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대사를 거의 비명을 지르듯 내뱉는다. 마치 죽은 엘리자벳사가 정말로 미나로 태어나 되돌아오기라도 한 듯한 느낌. 그리고 드라큘라가 죽은 후에도 그저 신에게 가만히 슬퍼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아니다. 거의 신의 멱살을 잡고 원망하는 느낌으로 절규한다. 이 불쌍한 사람을 당신이 망쳤다고 욕이라도 내뱉는 것 같다. 특히 어떤 날의 임혜영 미나는 마치 드라큘라가 She에서 신을 저주하는 장면을 다시 미나가 되풀이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배우의 캐릭터 해석과 연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매력

뱀파이어 슬레이브들

글이 길어질듯 해서 드라큘라와 미나의 캐릭터에 대해서만 썼지만, 다른 역할의 배우들 역시 다양한 캐릭터 해석과 연기를 보여준다. 심지어 같은 배우라 해도 매번 천편일률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페어나 몰입도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역할에 몰입하면서 감정 노선이 변하기도 한다. 앙상블 배우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장면이 되면 또 눈이 분주하고 즐거워진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2020년 6월 7일까지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볼 수 있으니, 꼭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중요한 건 2층 6-7열정도까지는 맨눈으로 보아도 볼만 하지만(표정이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그 뒤로 갈 수록 오페라글라스가 반드시 필요하니 이 부분을 참고할 것. 특히 배우의 얼굴 연기가 가까이 보고싶다면 1층 뒷열부터는 무조건 오페라 글라스를 대여하는 것이 좋다. 이번이 아니면 또 이 페어로 오리라는 보장이 없고, 좋아하는 페어의 극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하고 있으니 기회가 있는 분들은 하루라도 일찍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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